오사카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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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의 역사

오사카 땅에는 먼 1만년 이전부터 인류가 살고 생활해 온 것으로 밝혀져 있습니다. 5세기 경에는 한반도 등으로부터 전해진 중국의 문화가 널리 보급되고 오사카가 일본의 정치·문화 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7세기에는 일본 최초로 중국의 수도를 모방한 도성이 오사카에 설치되었습니다. 그 후, 수도는 이웃 도시인 나라나 교토로 옮겼으나, 문화·통상의 입구로서의 역할은 변함 없었으 며, 이후에도 계속된 번영을 하였습니다.

12세기말 이후, 정권이 무사의 손에 넘어가고 전란의 세상이 되었으나 사카이[堺]는 중세의 이탈리아와 같은 자유도시로서 발전했습니다. 더욱이 1583년, 천하통일을 완수한 도요토미 히데요시[秀吉]는 오사카를 본거지로 정하고, 거대하고 화려한 오사카성을 축성, 일본의 정치·경제의 중심지로 되었습니다.

17세기에는 정치의 중심이 당시 에도라고 불려지던 도쿄로 옮겨졌으나, 오사카는「천하의 부엌」즉 전국의 경제나 물류를 관리하는 곳으로서 중요한 역활을 했습니다. 이 시대에 오사카에서는 널리 읍민을 중심으로한 문화가 성숙하였으며, 더 나아가서는 가이토쿠도[懐徳堂]나 데키주쿠[適塾]와 같은 관제의 학문에 얽매이지 않는 사립학원에 의한 학문도 오사카에서 뿌리를 내렸습니다. 이렇게 하여 개방적인 기풍이나 왕성한 기업가 정신이 자라났으며, 이윽고 근대의 대도시가 되는 풍족한 지반이 만들어졌습니다.

그 후 19세기에는 메이지유신[明治維新]과 근대국가 성립을 향한 혼란으로 인해 오사카 상인은 대단한 타격을 받았으나, 그 상황으로부터 탈출, 공업도시로서 발전을 이뤄 근대도시에의 탈피를 시도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있었던 공습의 대피해로부터 다시 일어선 오사카는 일본을 대표하는 상업의 도시로서 유통, 무역 그리고 공업에 큰 역활을 해 왔습니다.

그리고 현재 오사카는 국내외의 인재와 물자, 그리고 정보가 교류하는 세계도시로 크게 비약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동탁[銅鐸] (하비키노시[羽曳野市])

동탁[銅鐸] (하비키노시[羽曳野市])

지금으로부터 약2000년 전에 의식행사 때 사용되던 청동제의 종. 시대의 흐름에 따라, 실용성에서는 멀어져 심볼적인 것이 되었다.


이케가미 소네[池上曽根] 유적 (이즈미오쓰시[泉大津市]·이즈미시[和泉市])

야요이[弥生]시대(기원 전 10 세기 기원-3 세기)의 대규모 유적. 유적의 거의 중앙부의 땅에 거대한 기둥을 세운 건물의 유적이 발굴, 복원되었다.

이케가미 소네[池上曽根] 유적 (이즈미오쓰시[泉大津市]·이즈미시[和泉市])

닌토쿠[仁徳] 천황릉 (사카이시[堺市])

닌토쿠[仁徳] 천황릉 (사카이시[堺市])

5세기의 닌토쿠 황제의 분묘라고 전해지는 전방후원분으로, 면적으로서는 세계최대. 삼중의 호로 둘러싸였고, 분구 부분의 전장은 486 미터, 높이는 35 미터나 된다.


슈라[修羅]

다이샤쿠텐[帝釈天]에게 싸움을 건, 고대 인도의 신·아수라. 그 신화로부터 큰 돌(다이샤쿠)을 운반하는 차 등 운반 도구의 명칭을 슈라라고 부르게 됨. 1978년 후지이데라 미쓰즈카[藤井寺三ツ塚] 고분에서 발굴된 Y 자형의 목제 썰매는 길이8.8 m. 5∼6세기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진제공 : 오사카부 교육위원회)

슈라[修羅]

나가하라타카마와리[長原高廻り] 2호무덤 선형 토용

나가하라타카마와리[長原高廻り] 2호무덤 선형 토용

토용이란 고분의 정상이나 단상에 배치되어 있는 초벌구이의 토기. 고분시대(3-7 세기) 오사카는 정치·경제의 중심지이었다. 동아시아국 사이에 드러누운 대해원을 오가며, 기술이나 문화를 나른 것은 이런 배가 아니었을까. 5세기.


시텐노지[四天王寺] (오사카시[大阪市])

593년 쇼토쿠[聖徳]태자가 건립한 우리나라 최고의 관사이다. 국보, 중요 문화재 등 사보도 많다. (사진 제공: 오사카 관광 컨벤션 협회)

시텐노지[四天王寺] (오사카시)

오사카성 (오사카시)

오사카성[大阪城] (오사카시[大阪市])

덴쇼[天正] 11년(1583) 히데요시[秀吉]에 의해서 착공된 오사카성. 천수각은 웅장한 5층으로 이루어지고, 히데요시가 이미지한 대도시의 심볼에 어울리는 웅장하고 화려함을 나타냈다. 그리고 에도시대 초기에 도쿠가와[徳川]막부에 의해, 또한 쇼와[昭和] 6년(1931)에 시민의 손에 의해서 재건된 천수각은 그 풍격으로 봐도 역시 오사카의 심볼. (사진 제공: 오사카 관광 컨벤션 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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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시대‐사카이[堺]‐

15세기 중반 명나라 파견선의 발착항으로 된 것을 계기로 국제 무역항으로서, 전국시대에 대단히 번영했다. 시가는 환상호로 자주 방위의 태세를 갖추고, 부유한 상인들에 의한 자치가 확립되어 있었다. 또한 일본문화의 초석의 하나라고도 할 수 있는 다도는 이 땅에서 대성되었다. (오사카성 천수각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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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의 부엌」의 성황

「천하의 부엌」의 성황

에도시대(17-19세기)에 「천하의 부엌」이라고 불린 오사카는 전국의 물자가 집산하는 도시였다. 수운이 발달한 도사보리가와 [土佐堀川] 및 에도보리가와[江戸堀川] 연변에는 영주의 저택이 즐비하게 서 있다. 또한 겐로쿠[元禄]기에(17세기)는 도지마 [堂島]쌀시장, 덴마[天満]채소시장, 자코바[雑喉場]생선시장이 오사카 3대 시장이라고 불리며 한층 번창했다. 물품의 교류뿐만 아니라 장사를 통하여 전국의 정보센터와 같은 기능도 했다. (오사카성 천수각 소장)


데키주쿠[適塾] (오사카시[大阪市])

난학자 오가타 고안[緒方洪庵]의 사립학원. 오무라 마스지로[大村益次郎], 하시모토 사나이[橋本佐内], 후쿠자와 유키치[福沢諭吉]… 근대일본의 초석을 쌓은 많은 선각자를 배출했다.

(Picture) Tekijuku

(Picture) Senpukan

센푸칸[泉布観] (오사카시[大阪市])

영국의 건축가에 의해서 1871년에 세워진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 건축물. 조폐국의 영빈관으로서 사용되고 있었다.


면업 회관[綿業会館] (오사카시[大阪市])

메이지유신[明治維新](19 세기 후반)에 의한 혼란으로 한때 오사카 경제는 저조했지만 메이지 중기, 방적업의 성공으로 전국 제일의 방적도시가 되어 「동양의 맨체스터」라고 불리며 활성화되었다. 면업 회관은 쇼와 6년(1931) 준공. 오사카의 근대화를 상징하듯이, 호화롭고 섬세한 디자인이 채색되어 있다.

(Picture) Mengyo Kaikan

(Picture) 1970 World EXPO

일본 만국박람회 (스이타시[吹田市])

「인류의 진보와 조화」를 테마로 우리나라에서 또한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국제 박람회. 약330만 평방미터의 부지에 116개의 전시관이 들어섰으며, 입장객 약6,422만명을 기록했다. (사진제공 : 일본 만국박람회 기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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